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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하고 싶어 하는 일을 하나씩 하며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우선 책을 읽고 느꼈던 것을 같이 공유하고 싶습니다. 시간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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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란 돌봄>

누군가를 돌보는 것

양가 부모님께서 아직 건강하셔서 돌봄에서 거리가 멀고 나와는 관련없는 일처럼 여겨왔었다. 그러다 지인들이 부모님간병과 돌봄으로 힘들어하는 것을 요즘 듣게 되었다. 나에게도 곧 다가올 걱정스러운 것이 부모님의 돌봄이다. 

 

아직까지 우리 사회에서 가족안에서의 돌봄을 당연하게 여기고 가족 중 누군가 희생을 해서 하고 있다. 

어느날 갑자기 독립해서 회사생활을 하며 살아가는 청년에게 아버지 또는 어머니를 돌봐야 하는 상황이 되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까?

이 청년에게 국가가 해줄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초등학생 자녀가 부모를 돌봐야 한다면?

 

새파란 돌봄은 젊은, 어린 자녀들이 부모를 돌봐온 경험이 있는 사람들의 실제 이야기이다. 

돌봄이라는 행위가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어 갑자기 한 가정이 무너지는 상황까지 가지 않도록 여러가지 준비가 필요한 것 같다. 

 

이 책을 보다가 어떤 특이한 지점이 발견되었다. 

돌봄을 하느라 인생이 힘들고 어려웠던 사람들이 다시 사회에서 자신처럼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을 도울 수 있는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53. 가족은 권력이 작동하는 공간이다. 가족에 부여된 책임과 권한은 때때로 권력에 따라 배분된다. 책임은 약자가 지는 반면 권한은 강자가 부릴 수 있다는 말이다. 

 

58. 푸른은 청소년 지도사와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준비하고 있다. 중학교 2학년 때부터 꿈꾼 진로다. 푸른의 집안 사정을 알게 된 청소년 문화 기관의 어느 선생님이 해준 한마디 덕분에 찾은 꿈이다. 

"그때 해준 말은 '네 잘못이 아니야'였어요. 그때까지 저는 마음에 높은 벽을 쌓고 있어서 아무도 다가오지 못하게 했던 것 같아요. 선생님의 행동이 저한테는 벽을 없앨 수 있게 해줬어요. 그때 생각했죠. '나도 나 같은 청소년들이 있다면 그런 청소년들이 기댈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하면서 청소년 지도사라는 꿈을 꾸게 됐어요. 

 

76. 집 안에서 하는 돌봄은 집 밖에 나가 하는 일보다 가치가 없다고 여겨졌다. 이윤을 내지 않기 때문이다. 돌봄은 사적 영역에서 일어나기 때문에 공적 영역을 무대로 하는 생계에 견줘 가치 없는 일이 됐다. 집 안의 돌봄은 여성의 몫으로, 집 밖의 생계는 남성의 일로 여겨졌다. 이런 성별 분업은 여성 차별을 정당화하는 기제가 된다. 돌봄 없이는 가정이 굴러가지 않는데, 돌봄은 마치 없어도 되는 요소로 취급됐다. 돌봄이 불행이 되는 맥락은 이윤을 내는 일과 내지 않는 일, 공적 영역과 사적영역, 남성과 여성 사이의 위계인 셈이다. 이런 위계를 그대로 둔 채 돌봄의 주체가 아이와 청소년으로 바뀐다면 어떻게 될까? 아이와 청소년은 돌봄의 자리를 채울 뿐 아니라 돌봄을 불행으로 만드는 맥락도 이어받는다. 

 

78. 돌봄은 누구나 격을 수 있는 상황인데도 우리는 마치 삶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예외'처럼 여긴다. 언제든 겪을 수 잇지만 아무런 준비도 안 하고 정보도 없는 상태에 머무른다. 좀더 일찍 돌봄 교육을 받는다면 돌봄을 마주할 때 겪게 되는 혼란을 줄일 수 있다. 교육을 통해 돌봄이 우리 삶의 '예외'가 아니라고 배운다면, 여러 질병 상황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행동을 해야 하는지 알고 있다면, 내가 하는 돌봄이 공적 가치를 지닌다는 사실을 인정한다면, 돌봄이 끝난 뒤의 애도에 관해 한 번이라도 이야기한다면, 우리 삶은 좀더 나아진다. 

 

145. 우리는 인간의 '정상'적 인지 능력이 있다고 여기고, 그런 인지 능력에 미치지 못하는 생명을 '비정상'으로 분류한다. 인지 저하 당사자는 '비정상'으로 여겨지는데, 정신 질환자나 정신 장애인이 그렇다. 동물도 마찬가지다. 동물도 인간의 '정상'적 인지하고는 다른 인지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다름'을 '비정상'으로 여기는 규범은 다른 존재들이 서로 이어질 수 잇는 가능성을 차단한다. 여기서 반려동물은 예외적인 존재다. 반려'동물'이 인간의 '정상'적인 인지하고는 다른 인지를 갖지만, 우리는 그 다름 속에서 이어지는 방식을 찾는다. '반려'동물이기 때문이다. 정상과 비정상의 규범을 벗어나 어떤 인지 상태이건 '반려'의 언어를 찾는다는 의미에서 경훈이 말하는 '반려동물'은 비유이자 직유인 셈이다. 할머니가 지닌 다름을 인정하고 다른 방식의 관계를 맺으면 그만이다. 경훈은 비로소 할머니의 존재 자체를 느낄 수 있게 됐다. 

 

 

 

Posted by 시간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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