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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하고 싶어 하는 일을 하나씩 하며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우선 책을 읽고 느꼈던 것을 같이 공유하고 싶습니다. 시간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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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라디오를 여전히 재밌게 듣고 있다. 요즘 즐겨 듣는 채널은 <김신영의 정오의 희망곡>, <FM클래식라디오>,<뮤지, 안영미 두시의 데이트>, <오후의 발견 이지혜입니다> 이다. 라디오는 디제이와 뭔가 교감하는 그런 느낌이 좋다. 더 잘 알게되는 것 같고 더 인간적인 모습을 보고 정이 드는것 같다. 이런 라디오 프래그램을 만드는 장수연 피디님의 책을 보고 공감되는 것이 많았다. 장수연피디님이 피디가 되어 김연수 작가님을 만난 사연은 정말 드라마틱하다. 그외 직장인으로서 겪는 비슷한 고민과 삶에 대한 깨달음이 좋았다. 이 책도 많은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97쪽 한 사람을 개인이 아닌 집단으로 보는 시선 때문에 불쾌했던 경험, 나도 많다. 남자, 여자, 비혼, 기혼, 아이 있는 여자, 어느 대학 출신, 어느 지역 출신, 그러니 너는 이러할 것이라는 손쉬운 단어. 최근까지도 회사 사람들이 아이 엄마이기 때문에 트렌디한 프로그램, 심야 음악 프로그램은 잘 못 만들 거라고 생각할까 봐 불안했다. ‘아이 엄마’하면 떠오르는 이미지-질끔 묶은 머리에 레깅스와 벙벙한 티셔츠를 입고 유모차를 미는 민얼굴의 여자-에 갇힐까 봐 신경 쓰였고 그런 불안감이 종종 나의 부자연스러운 행동을 야기했음을, 무리르 하게 만들었음을 안다. 나에 대해 ‘묻지 않고 내린 결론’들 때문에 짜증스러웠던 적이 많으면서 나 역시 똑같은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던 것이다. 나는 피해자인 줄로만 알았다. 누구나 가해자가 될 수 있다는걸, 피해자도, 약자도, ‘을’도 마찬가지라는걸 간과했다.

100쪽 글을 쓰고 싶은 것인가,작가가 되고 싶은 것인가. 이 질문이 크게 와닿았다. 라디오 피디로 일하면서 비슷한 고민을 많이 한다. 나는 MBC라는 회사에 입사함으로 인해 피디가 외었지만, 좋은 피디가 되기 위해서는 내 정체성을 ‘MBC 직원’보다 ‘라디오 피디’에 두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느낀다. CBS라디오 정혜윤피디의 강의를 들은 적이 있다.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담은 책<<그의 슬픔과 기쁨>>을 쓰게 된 과정에 대해 그는 ‘여러 여건상 프로그램에 담아낼 수 없어서 책으로 냈다’고 말했다.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해서, 내게 주어진 편성 시간을 채워야 해서 소재를 찾는 게 아니라 ‘하고 싶은 말’이 있어서 프로그램을 만드는 사람이라니, 그야말로’진정한 피디’가 아니가! 세상에 대해 하고 싶은 이야기, 방송으로 만들 수 없으면 책으로라도 써야 직성이 풀릴 만큼 강렬한 말하기의 욕구…… 정유정 작가의 말을 다시 떠올렸다. 나는 피디라는 직업을 갖고 싶었던 것일까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었던 것일까. 나는 방송국 직원인가 피디인가.

101쪽 ‘이건 일일 뿐이야’, ‘어차피 나는 직장인인데 뭐’ ‘이렇게까지 한다고 누가 알아주나’.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진짜로 ‘어차피 직장인일 뿐’ 이라고 생각하면 안된다. 절대 설득되면 안되는 말로 스스로를 설득하는 것이다. 직장인이되 직장인이면 안 되는 사람, 하고 싶은 대로 할 수없는데 계속 하고 싶은 게 생겨야 하는 직업. 피디에게 욕구 관리는 진정 중요하다.
중략. 그렇다면 ‘욕구 관리’는 어떻게 할 수 있을까. 내가 찾은 방법은 스스로를 ‘피디’라고 생각하지 말고 ‘세상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105쪽 어쩌면 내게 ‘모범생 기질’이 있어서인지도 모른다. 싫은 소리 듣고 싶지 않는 마음. 칭찬을 추구하는 태도. 하지만 세상의 많은 일들이 그렇듯 방송도 몇 사람의 칭찬으로 평가받을 수 있는 종류의 결과물이 아니고, 지적받지 않는다고 꼭 좋은것도 아니다.

136쪽 누구나 언제든 내가 증오하고 경멸했던 사람들, 한심하게 여겼던 사람들처럼 될 수 있다는 걸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그건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다. 내면의 목소리에 한두 번만 눈감으면 된다. 외면은 습관처럼 익숙해질 것이고 그러다 보면 어느새 스스로 그게 맞다고 믿고 있을 것이다. 그것은 늙어가는 일과 비슷하다. 아니, 그 자체가 어떻게 나이 들어 갈 것인지를 선책하는 순간들이다. 나는 내가 추하게 나이 들까봐, 조직의 적체된 기성세대가 될까 봐 두렵다. 나빠지려고 마음먹은 사람들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부단히 자신을 성찰하지 않는 평범한 사람들이 옳지 않은 길로 들어서는 거라는 걸 안다. 트레바리의 윤수영 대표가 이런 마을 했다. “갈수록 빠르고 복잡하게 변하는 세상에서는 지속해서 업데이트를 하지 않으면 경제적으로도, 도덕적으로도 도태된다.” 핵심은 ‘도덕적으로 도태된다’에 있다. 지적으로 연마할 것, 선택의 순간에 숨지 말고 행동할 것. 명심하지 않으면 어느새 내가 욕하던 그 사람들처럼 돼 있을지 모를 일이다.

206쪽 10대 시절부터 나는 다른 사람들이 다 하는 ‘전형적인 일들’이 우습다고 생각했다. 고등학교 땐 수학여행을 가지 않았었다. 중략. 어머니가 도아가시고, 아버지는 뇌 기능이 많이 떨어지신 지금, 그 동안 ‘전형적인 일들’을 우습게 여기고 건너뛰었떤 게 좀 후회된다. 수학여행이나 졸업식, 크리스마스 식사나 설날 세배 같은 ‘연극적인 행사’대신 실용을 추구했다고 생각했었는데, 그게 고작 도서관에서 하루 더 앉아 상식 문제를 외우는 일이었다. 그런 일은 사랑하는 사람이 임종을 앞뒀을 때 함께 추억할 만한 일이 못 된다. 이번주 일요일, 여덟 살 딸아이가 피아노 연주회 무대에 선다. 두 곡, 채 5분도 되지 않을 짤막한 시간이고 뚱땅뚱땅 수준의 연주겠지만 나는 꽃다발을 들고 가서 축하해주고 무대에 접근해 사진도 찍을 생각이다. 친척 집에 놀러가면 거실에 그집 딸의 어린 시절, 발레니나처럼 입고 피아노 앞에 앉아 있는 사진이 걸려 있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역시나 내가 우습다고 생각했던 연극적이고 전형적인 그림 중 하나였는데, 지금도 연극적이고 전형적이라고 생각하지만 우습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돌아가신 엄마께, 그리고 많은 기억을 읽은 아빠게 내가 ‘그것 기억하세요?’라고 묻고 싶은 추억들 중 상당수가 그런 일들이기 때문이다.

Posted by 시간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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