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야기

먹고 사는 게 전부가 아닌 날도 있어서-노지양

시간은신 2021. 11. 9. 09:21


27. 내 번역이 형편없고 오역이 많다며 “백 번 천 번 생각해봐도 번역료를 다 드릴 수 없습니다.”라고 적힌 메일을 받은 날도 있다. 그렇게까지 세차게 뺨을 맞은 기억은 없는 것만 같았다.

110. 메릴 스트립의 딸인 마미 검머가 주연한 <에밀리의 병원 24시>라는 드라마를 우연히 보았는데 마지막 내레이션이 내 마음을 그대로 말해줘서 놀랐다. 구글에서 찾아보니 다른 사람들도 좋아요를 눌러놓았던 내레이션이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판단하지 않기가 어렵다. 왜냐하면 우리는 모든 실수를 인식하고 잇으니까. 우리 내면의 불안과, 우리의 숨겨져 있는 의도와, 우리의 실패들을. 그래서 내년 나의 소망은 나 자신에 조금 더 여유를 주는 것이다. 나쁜 점은 덜 보고 좋은 점을 더 보길. 그냥 나 자신에게 여유를 주고 싶다.”


122. 한때 실패와 우울과 좌절의 진창에 빠져 허우적거린 세월이 있고, 그 때문에 현실과 이상의 간극은 점점 더 벌어졌고, 그러면서도 날 드러내고자 하는 욕망은 사그라들지 않았다. 아직 제대로 구현되지 않아서 그렇지 보여주지 않기엔 살짝 아깝다고 생각하는, 때때로 예쁘고 탐스러운 꽃이 피는, 창의성과 감수성이라고 하는 정원이 분명 내 안에 있는데. 그래도 내 조건 안에서 포기하지 않고 어찌어찌 버텨 루저, 날건달, 놈팡이가 되진 않았으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139쪽 라이딩, 러닝
그래도 두 운동의 공통점이 있다면, 이제 그만 쉬고 싶을 때 ‘조금만, 조금만 더’ 하면서 힘을 쥐어짜내다 보면 목표 거리나 기록을 아주 살짝이나마 뛰어넘을 수 도 있다는 점, 둘 다 내몸을 발견해나가는 일이라는 점, 고통스러운 시기를 지나면 쉬워지기도 하다는 점, 목표 지점이 보이면 나도 몰랐던 젖 먹던 힘이 난다는 점이다.

170. 그 적은 바로 ‘생각’이란 녀석이었다. 생각들도 주말에 푹 쉬고 나왔는지 기세가 등등했다. 설거지를 하러 가면 내 신세가 왜 이렇게 처량해졌는지 원인을 파헤치라고 명령했고, tv를 틀어 어떤 사람을 보면 그 이름과 비슷한 과거 악연의 이름을 떠올리게 했으며 안방으로 가면 몇 년 전 누군가에게 들었던 굴욕적인 말드이 생생하게 재생되었다.
생각이 너무 많아서 미쳐버릴 것 같은 때 있나? 나는 종종 그렇다.
탈출을 하는 심정으로 밖으로 나와 도서관으로 걸어갔지만, 도서관까지의 고즈넉한 산책로도 나를 레어티스에게서 떨어뜨려놓지 못했다.
‘그래, 난 항상 이랬어. 몇 년 전의 일 때문에, 나에게 오지않았어야 할 인연 때문에, 나의 무능력과 실패 때문이 아니야. 생각이 많아 힘들었던 때가, 머리가 터져버릴 것 같았던 때가 오늘 하루만은 아니잖아. 내가 현재 불행해서가 아니라 나는 처음부터 이렇게 생긴 사람인거야.’
Embrace myself
‘나를 끌어안다’라는 단순한 한국어 문장 하나면 이 모든 심오한 의미가 정확히 전달된다고 생각한다.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거나 혼자 사색하다가 혹은 즐거운 일이 생겨서 또다시 나와 화해했을 수도 있다. 다른 특별하고 참신한 해결책이 나올 리도 없다. 어느 날은 생각이 많은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작가님이랑 너무 같은 상황이 많아서 놀랐다. 특히 생각이 많아지고 생각이 공격하는 지점은 너무 똑같다. 그 생각을 없애기위해 노력하는 과정들까지도…생각이 많고 갑자기 우울한 기분이 찾아오고, 불안해지고, 무기력해지려고 하는 나를 받아들이는 과정은 어떻게 해야하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