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야기

욕구들-캐럴라인 냅, 정지인 옮김

시간은신 2021. 7. 15. 17:01


<명랑한 은둔자>를 읽고 너무 좋아하게 된 캐럴라인 냅의 책이다. 암진단을 받기 2개월 전에 탈고했으며 그가 죽은 다음 해에 출판된 책이라고 한다. 이 책도 너무 너무 좋다. 내 과거가 이 책에 다 있는 것 같다. 내가 보낸 10대, 20대, 30대의 모습이 떠올랐다. 내가 경험했던 것들을 이렇게 자세히 솔직하게 쓸 수 있었을까? 캐럴라인 냅은 아주 섬세한 부분까지 솔직한 글쓰기를 하는 것 같다. 이런 글을 써준 작가님께 너무 감사하다. 책을 읽으며 많은 부분 위로를 받았다. 내 잘못이 아니었고, 사회가, 문화가 그랬다. 다이어트를 수없이 했고, 온갖것을 다 사들였다. 하루에 코트만 5개를 산적도 있다. 구두같은 건 말할 것도 없다. 스탕킹은 서랍이 가득할 정도로 종류별, 생깍별 등 다양한 모든것을 다 샀다. 한 때 미니스커트가 유행할 당시 비슷한 모양의 스커트만 몇 십개가 넘었다. 하루종일 운동만 했던 적도 있다. 하루종일 걸었다. 중간에 커피정도만 마셔가면서……그 때 내겐 어떤 허기로 가득했을까?  다이어트와 요요현상이 반복되는 20대가 지금 생각해도 너무 안쓰럽다. 나를 그대로 바라보는 남편을 만나 내게 과거의 문제들이 많이 해결되었다. 지금은 다이어트도, 꾸밈도, 술에 취해 기분을 달래는 일도 거의 없다. 아이들과 가정속의 사랑이 나를 채우고 있다. 라캉의 말처럼 다시 또 다른 욕망때문에 허기를 느끼겠지만 옛날처럼 다이어트로, 무리한 운동으로, 술로 대신 채울일은 없을 것 같다.

29쪽 굶기는 역시 과장된 방식으로, 여성 전반에 대한, 특히 여성의 신체에 대한 엄청나게 많은 (그 일부는 내 가족에게서 물려받았지만 거의 대부분은 문화가 뒷받침한) 감정들과 여성의 신체는 선척적으로 어떤 부끄러운 결함을 내포하고 있으면 끊임없이 감시하고 통제해야 한다는 생각을 순순히 받아들인 결과였다.

32쪽 남자들과의 강박적인 관계, 통제되지 않는 쇼핑과 빚, 삶 전체를 좌지우지할 정도의 외모에 대한 집착, 온갖 종류의 ‘이즘’들. 이 모든 것이 험함과 관련되어 있고 내면의 공백을 잘못된 방향에서 메우려는 노력과 관계있으며 모두 뚝같은 어둔운 감정에서 비롯된다.

71쪽 뚱뚱한 여자는 추하고 역겨우며 근복적으로 무가치하게 취급된다.

82쪽 여기서 작동하는 이중 잣대의 예가 하나 필요하다면 빌과 힐러리 클린턴을 생각해보면 된다. 빌의 포동포동함과 맥도날드를 좋아하는 취향은 호감을 주는 특징으로 여겨지고, 그의 성욕은 비판받긴 했지만 결국 대부분의 미국인들에게 용서받았거나 적어도 그의 업무 수행과는 무관한 일로 취급되었다. 힐러리는 그런 너그러움을 누리지 못하며, 그의 외모(헤어스타일, 옷, 다리)에는 가차 없는 관심이 집중되고, 그의 야망을 향해 쏟아지는 적개심은 독처럼 매섭다. 이 원칙에는 단 하나의 예외가 있다. 수많은 타인들이 여자들의 필요에 봉사하기 위해 말 그대로 앞으로 달려나오는 단하나의 영역은 바로 쇼핑, 그것도 특히 고급 소비재 쇼핑이다.

109쪽 더 날씬해지고, 더 예뻐지고, 옷을 더 잘 입고자 한느, 그러니까 다른 존재가 되려는 이 충동은 무엇일까? 이 다른 존재는, 그가 입고 있는 재킷 혹은 그가 먹지 않는 음식을 제쳐둔다면, 정확히 어떤 사람이며 어떻게 보이는 사람인가? 이런 질문들이 스물한 살, 스물두 살, 스물세 살 때의 나 자신을 , 뼈만 남은 몸으로 작은 접시 위에 몸을 웅크리고 작디작은 사각형으로 자른 사과와 치즈를 조금씩 오물오물 먹고 있던 그때의 나를 떠올릴 때 나를 괴롭히는 질문들이다. 나는 무엇을 느끼고 있었을까? 무엇을 느끼지 않으려고, 그토록 필사적으로 노력하고 있었던 걸까?

140쪽 외모로 평가당할 때 혹은 남자가 생각해주는 척하며 얕잡아볼 때, 똑같은 일을 하고도 더 적은 보수를 받을 때, 감히 자기 의견을 말했다는 이유로 ‘성질 나쁜 여자’취급을 받을 때 여자들이 느끼는 분노를 느꼈고, 자신의 역량과 지적인 유능함을 증명하기 위해 유별나게 열심히 일했으며, 분노에 찬 한 단계 한 단계를 밟으며 덜 수용적이 되고, 덜 보살피는 사람이 되며, 더 권리를 자각하고, 자신의 마음과 갈망에 더 깊이 헌신할 줄 알게 되었다.

169쪽 하나의 언어로서 육체 혐오. 날카로운 동사들과 독을 품은 명사들. 난 내 몸이 싫어, 내 허벅지가 싫어, 난 너무 많이 먹어. 내가 돈을 그렇게 많이 썼다니 믿기지가 않네. 몇 주 동안 헬스장에 한 번도 안갔어, 그 말은 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난 정말 멍청해, 난 그냥 똥 덩어리야. 내면에서 펼쳐지는 이런 종류의 장광설은 너무나 가혹하고 잔인하고 모욕적이어서 타인에게 그런 말을 들었다면 경악할 테지만, 그럼에도 이런 독백은 너무나도 흔하고, 너무 반사적으로 튀어나오기 때문에 얼마나 혹독한 말인지도잘 알아 차리지 못한다. 그냥 튀어나온다. 거울 앞에서 본능적으로 튀어나오는 ‘으윽’, 보기 싫은 머리, 완벽하지 않은 피부를 두고 매일같이 갈기는 자아를 향한 채찍질, 탈의실에서 들리는 역겨움의 자인, 나 좀 보, 꼬라서니가 말이 아니야. 상태가 나쁜 날에는 구체적인 것(허벅지, 배)에 대한 미움이 자신에 대한 미움과 하나이며 똑같은 것이라는 듯 서로 구별도 되지 않는다. 내가 아는 어떤 이는 청바지의 지퍼가 자기 머릿속에 있는 오이오 테이프를 작동시키는 것 같다고 했다.

173쪽 그것은 마치 심판하는 어떤-나이기는 하나 정확히 나는 아닌-존재가 내 정신의 한구석에 계속 살면서 지켜보고 있고, 항상 몸을 의식하고, 항상 형태와 중량과 몸선의 모든 미묘한 차이에 주의를 기울이고, 항상 최악을 예상하며, 게으름이나 나태함이나 느슨해진 통제의 기미가 보이기만 하면 언제라도 따귀를 날릴 태세를 갖추고 있는 것 같다.

185쪽 마치 여성의 육체를 조심스럽게 관리하고 통제하지 않으면 위험하거나 혐오스러운 뭔가가 뚫고 나올 것처럼. 정말 기가 막힌 것은 이 관념에서 도저히 벗어날 수 없다는 점, 그 메세지가 쉴 새 없이 타격을 가해온다는 점이며, 그래서 그 메세지를 내면화하기는 너무 쉽고 내면화하지 않기는 너무 어렵다는 것이다.

273쪽 나를 그토록 끈질기게 내몰았던, 걷잡을 수 없는 필요의 감각이 도사리고 잇다. 외현화하려는 끝없는 충동. 모든 문제에는 즉각적인 해결책이 있고 모든 공허는 상품으로, 물질로, 그 무언가로 채울 수 있다는 생각을 꽉 잡고 놓지 않는 믿음.

277쪽 그의 물건들을 하나하나 바라보며 내가 너무나 가진 게 없다고 느껴졌꼬, 너무 초라하고 작게 느껴졌다. 중략. 나는 3초만에 그에게 반했다. 그런 광경이 얼마나 유혹적일 수 잇는지, ‘만약….만’일 얼마나 강렬하게 우리를 장악할 수 있는지 알려주는 일화다. 만약 내게 저 집, 저 예술품, 저 취향, 저 남자만 있다면, 바로 그러면 될 거야.
사물들-무엇인지 정확히 지목할 수 있는 대상들, 상품들, 명확한 상표와 가격표가 붙은 목표들, 만나 지 5분밖에 안 된 남자들-은 아주 쉽게 갈망을 보관할 수 있는 장소이고, 다른 욕망들을 아주 쉽게 가려줄 수 있는 가면이며, 다른 욕망들이 좌절되거나 이름 붙일 수도 없는 욕망이 생겼을 때 차오르는 불쾌한 불안감에 대한 아주 손쉬운 치료제다.

만약 무언가만 된다면, 만약 그러기만 한다면… 이런 것이 바로 소비주의의 음흉함이다. 그것이 우리에게 쇼핑을 권하는 것이 아니라 잊기를 권한다는 것, 욕구에 불꽃을 당기는 것이 아니라 욕구를 희석시킨다는 것, 욕구를 수축포장하여 가장 다루기 편하고 가장 구체적인 통에 던져 넣는다는 것.

306 마음 잡고 앉아서 자기가 인생에서 정말로 원하는 것들의 목록을 작성해보았는데, 너무나 놀랍게도 그중 대부분이 이미 자기가 갖고 있는 것이더라고 했다. 사람들과의 연결있음. 사랑하는 사람들, 있음. 공동체에 대한 소속감, 있음. 그 모든 것에다가 충분한 돈까지. 다이앤은 그 목록을 보며 희망이 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320쪽 “욕망은 절대 파괴되지 않는 영구성을 지니고 있다. 욕망은 소멸하지 않는다.” 프랑스 정신분석하자 자크 라캉이 한 말이다. 그는 인간으로 존재한다는 일에는 근본적으로 만족시킬 수 없는 무언가가 존재한다고, 그러니까 우리는 추구와 갈망의 조건인 허기의 경험과, 일시적 만족을 줄 수는 있지만 언제나 새로운 추구와 새로운 갈망에 밀려나고 마는 채워짐의 경험 사이에 감도는 긴장을 처음부터 지닌 채 이 세상에 태어난다고 생각한다.

358쪽 허기를 이해하는 것과 만족하는 것은 다르다. 중략. 아주 운이 좋다면 거의 세포 수준에서 일어나는 것처럼 느껴질 만큼 깊고 진정한 방식으로 허기를 채워줄 적합한 형태, 적합한 종류의 만족을 발견하기도 한다. 욕구에 도장을 받고 마침내 충족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