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야기

달의 궁전 - 폴 오스터 장편소설, 황보석 옮김

시간은신 2019. 2. 13. 06:10

 

책을 좋아한다고 했지만 미국 작가 책은 거의 읽은 적이 없는 것 같다. 미국이란 나라는 영화의 나라라고만 무의식적으로 생각했던 거 같다. 폴오스터 작가를 시작으로 많은 미국 작가 책을 읽고 싶다.

 

마르코 포그가 천권 정도의 책을 유산으로 받아 읽고 형편이 어려워지자 읽어나간 순서대로 중고서점에 파는 내용이 기억이 난다. 그 때 물려주신 외삼촌은 책을 어떤 기준으로 분류하지 않고 사서 읽은 순서대로 박스에 담아 주셨다. 그 순서대로 책을 읽어나가면 외삼촌 빅터포그와 같은 순서로 읽어가는 것이기 때문에 서로 책을 읽을 때마다 공감대가 생겼을 것이다. 이 부분이 참 좋다. 책을 읽고 같이 공감할 수 있을 때 참 행복한데 삼촌이 죽은 뒤 어찌보면 애도의 장면같기도 하고 이 것 보다 삼촌을 더 잘 알 수는 없을 것 같기도 하다. 참 좋다. 이부분...

 

집을 나와 공원에서 지내는 부분도 나를 설레이고 흥분하게 한다. 나 자시에게 전념한다는 거 상상만으로도 벅차오른다.

마을에서의 삶과 너무 대조적이다. 문 밖으로만 나서면 그 순간 비교하는 시선으로 바라본다. 나도, 우리집도, 우리 가족들도...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이 수시로 들지만 여기서 누리는 것들 때문에 매 순간 그냥 눌러있게 된다. 이 부분은 좀 심각하게 고민할 문제다.

 

- 86쪽 : 매일같이 나는 전날보다 조금씩조금씩 더 더러워지고 더 너저분해지고 더 혼란스러워져서 차츰차츰 나 이외의 모든 사람들과 달라졌다. 그러나 공원에서는 자의식이라는 짐을 지고 돌아다닐 필요가 없었다. 공원은 내게 문턱, 경계선, 내면과 외면을 구분하는 방법을 제공했다. 길거리에서는 어쩔 수 없이 나 자신을 다른 사람들이 보는 식으로 볼 수 밖에 없었지만, 공원은 나에게 내면적인 삶으로 돌아가 순전히 내면적인 관점에서 나 자신에 전념할 기회를 주었다.

 

공원에서 거의 죽을 뻔 한 것을 친구가 겨우 발견하고 도와준다. 마르코 포고는 일자리를 얻는다. 근데 그 일도 또 나를 설레이게 하는 경험이다. 어느 노인집에 들어가서 노인이 원하는 책을 읽어주고, 걷지 못하는 노인을 산책시켜주는 일이다. 노인(에핑)은 전혀 예상할 수 없는 인물로 나온다. 다시 이 책에 대해 쓰다보니 모든 상황이 다 재밌는 것 같다. 에핑과 산책을 하면서 눈이 보이지 않는 에핑은 주변 사물을 포그에게 설명하게 한다. 마치 시를 쓸 때 주변에 대해 자세히 관찰해야 하는 것 처럼 그런 과정이 보인다. 에핑은 포그에게 결국 글 쓰기를 가르친 것 같다. 에핑이 죽기 전에 원했던 것은 포그가 자신의 자서전을 쓰는 것이었다. 에핑은 포그가 완성도 높은 글을 쓰게 하기 위해서 계속해서 채찍질을 한 것이다.

 

-213쪽 : 나는 처음으로 죽음의 맛을 보았어. 그걸 알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만 마침내 그걸 알고 나면 마음속에 잇는 모든 것이 바뀌고 절대로 예전과 같아질 수가 없어. .......내 삶이 나 나자신의 것이라는 것, 어는 누구도 아닌 나 자신에게만 속한다는 걸 알게되었지.

 

- 249쪽 : 난생 처음으로 그는 결과에 대해 걱정을 하지 않았고, 그 덕분에 <성공>이니 <실패>니 하는 용언ㄴ 갑자기 의미를 읽고 말았다. 그는 예술의 참된 목적이 아름다운 작품들을 만들어 내는 데 있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것은 이해를 하는 방법, 세상 속으로 파고들어 거기에서 자기의 자리를 찾아내는 방법이었다.

 

- 408쪽: 우리 두 사람 모두 지나간 일은 잊어버릴 수 있다고 자신을 설득했음에도, 예전의 삶으로 다시 돌아가려고 했을 때는 그 삶이 더 이상 거기에 없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에핑의 아들인 바버를 만나 에핑의 자서전을 전해준다. 그 순간 바버는 포그가 자신의 아들임을 알게된다. 포그는 키티와 헤어진 후 바버와 에핑의 동굴을 찾아 나선다. 그러다 바버가 아버지임을 알게 된 순간 사고가 나서 바버가 죽게된다. 결국 포그만 남게된다. 포그는 계속해서 걷는다. 오랜 시간 끝없이 걷는다. 그 장면이 생생하게 떠오르고 가슴이 벅차오르게 한다. 이 소설 전체적으로 모험가의 이야기가 아닌가 싶다. 내 기질과 비슷해인지 많은 부분이 나를 들뜰게 했다. 다시 처음부분부터 읽어보니 또 다르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