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야기

아이들은 어떻게 권력을 잡았나 - 다비드 에버하르트지음, 권루시안 옮김

시간은신 2018. 9. 14. 14:17

 

육아서가 스트레스인 요즘 더이상 읽지 않으려고 했으나 저자가 여섯아이의 아버지라는 점과 스웨덴 육아라는 것에 관심이 쏠려서 읽게 되었다. 지금까지의 육아서와는 다른 내용이 있어서 위로를 받고 안심이 되었는데 다른 한편으론 뭐가 맞는 것인지 더 모르는 상황이 되었다.

 

많은 육아 전문가들이 내 마음을 불안하게 한 거였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육아는 처음이다보니 전문가의 말을 무조건 수긍하게 되었다. 아이들에게 최대한 많은 자유를 주는게 맞다고 생각했고 그 결과 부모의 권위가 거의 없는 모습이 되었다. 아이가 잘한 일에 대해 칭찬할 때 조차 전문가의 말을 따르게 되었고 진정한 나와 아이와의 만남이라기 보다는 전문가의 아바타가 내가 아이었나 싶다. 부모 스스로가 얼마나 믿느냐에 달려있다는 말이 와 닿는다. 너무 당연한 말이겠지만 육아에 대한 내 철학이 제일 중요하다는 것이다. 아이의 요구에 거절하기 힘들 었던 것들, 아이에게 규율얼 적용하기 힘들었던 것들이 많이 떠올랐다. 아이에겐 어느 정도 경계를 쳐 줄 필요가 있다고 많이 들었는데 내겐 그 경계가 너무 느슨했던 것 같다. 자신있게 아이들을 대하자.

 

 

29쪽 저녁으로 무엇을 먹을지는 아이의 뜻에 따라 결정되며, 텔레비전에서 무엇을 볼지 역시 아이들이 좌지우지하는 영역이 됐다.

36쪽 오늘날의 육아법에서는 우리는 아이들을 모든 것의 중심에 놓아야한다. 아이들을 이해하지 못하면 안 된다. 이것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 아이들은 장차 온갖 문제를 겪을 것이 분명하다. 이것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 아이들은 장차 온갖 문제를 겪을 것이 분명하다. 아이들이 안전모를 쓰게끔 신경을 써야하고, 아이들이 시키는 대로 하인 노릇을 해야한다. 절대로 아이들과 싸워서는 안된다. 아이가 뭔가 잘못된 말을 했을 때 왜 그랬는지 캐물어도 안 되고, 저녁 식사 시간에 소란을 피워도 배가 고픈 채 잠자리에 들게 해서는 안 된다.

 

58쪽 세상의 수많은 일이 그렇듯 육아도 부모가 스스로 얼마나 믿느냐에 달렸다.

 

63쪽  어떤 경우든 아이들은 유난히 연약한 인간이 아니며, 오늘날 우리가 듣게 되는 갖가지 주장과는 달리 거의 무엇이든 감당할 능력이 있다. 호되 꾸지람을 받아들일 능력이 있고, 질책을 받아들일 능력이 있으며, 사회에 적응하여 그 일원이 될 능력이 있다. 우리는 아이들을 어른의 세계에 대처할 수 있는 인간으로, 삶이 어떻게 펼쳐지든 그것을 헤쳐 나갈 수 있는 사람으로 자라나도록 도와야 한다. 당연해 보이는 것에 의문을 품을 수 있는 인간이 동시에 기대하는 것을 언제나 손에 넣을 수는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인간 말이다.  

 양육에서 중요한 것은 아이에게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제 구실을 해 내는 법을 학습하게 하는 것이다.

 

125쪽 여는 누구든 마찬가지로 사회의 일원이라는 점을 좋든 싫든 일찍부터 확실히 깨우칠 때 사람은 가장 건강할 것이다. 따라서 어쩔 수 없이 적응해야 하고 지루한 일도 감당할 수 잇어야 한다. 애석하게 산다는 것은 이따금 좋아하지 않는 것, 예컨대 재미도 없고 친절하지도, 심지어 공정하지도 않은 몇몇 교사나 어른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뜻이다.

 

144쪽 잘한 일에 칭찬을 하는 것은 전적으로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율을 비롯한 전 세계 여타 논객들은 그렇게 하면 아이가 수행 불안에 빠질 위험이 있어서 아이에게 해롭다고 말한다. 아이가 너무 경쟁적이 되기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부모는 "네가 한 일을 네가 자랑스레 여긴다니 나는 기쁘구나." 하는 식으로 말해야 한다. 뭔가 판단이 개입되지 않는 말을 해야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어리석은 전략이다. 이 방법을 쓴다면 부모는 아이와 이야기할 때 늘 하고 싶은 말을 억지로 참으면서, 해야할 말을 매우 신중하게 생각할 것이다. <중략>부모는 자신의 모습 그대로 아이를 대해야 한다. 그것이 아이에게 가장 좋다. 정직과 사랑으로 아이를 대하면 문제가 없다.

 

--> 이 부분에서 제일 많은공감과 위로를 받았다. 가끔 아이가 학교에서 좋은 성적을 받다왔을 때 난 늘 뭐라고 이야기 할지 고민을 하고 속으로 좋은만큼 표현하지 못하고 육아서에서 지적한대로 돌려서 말했다. 그게 정말 답답했다. 그런데 아아에게 솔직하게 표현해도 된다니 너무 다행이다. 뭔가 자유를 얻은 것 같은 기분이다.  

 

185쪽 오늘날의 전문가가 하는 말을 들어 보면, 부모가 시간이 부족하다면 아이를 굶기더라도 아이와 모노폴리 놀이를 하는 쪽이 더 낫다고 생각하는 듯 들린다. 그래서 육아에 관심이 많은 모든 부모를 위해 자그마한 비결 한 가지를 소개한다. 그것은 엄마, 아빠가 같이 놀아 주지 않고 식사 준비를 해도 그런 현실을 잘 감당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만일 아이가 부모의 말을 들어야한다는 생각이 권력 남용처럼 느껴지거나 아이를 너무 적게 사랑하는 것이라고 판단된다면 당신은 조만간 아이의 하인으로 전락할 것이 확실하다.

 

198쪽 우리가 아이들에게 뭔가를 요구하는 것을 덜 겁내야 한다는 뜻이다. 이말은 언제나 아이들이 원하는 대로 하도록 두어서는 안 된다는 뜻일 것이다.

 

231쪽 놀이터의 어른은 대부분 '나쁜 부모'로 비치는 것이 두려워 의무감에 나와 있었다. 다른 아이와 노는 아니는 한 명도 없었다. 내가 어렸을 때에는 놀이터에 어른이 거의 없었다. 아이들은 마음대로 함께 놀았다.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싶을 것이다. 내 생각에 그 한가지 이유는 부모의 과장된 관심때문이다. 부모들은 아이를 감히 혼자 두지 못한다. '우리 아이가 나쁜 아이들과 어울리면 어쩌지?'하는 생각 때문이다. '다른 아이들이 놀이에 끼워 주지 않아 우리 아들이 상처를 받으면 어쩌지?' 또는 '놀이가 너무 격해져 겯자블 수 없게 되면 우리 딸이 슬퍼하고 상처를 받을지도 몰라.'하는 드의 생각이 수많은 부모의 머릿속을 스친다.

 

232쪽 아이가 다른 아이들보다 부모와 놀게끔 하려는 그럴듯한 다른 이유도 있다. 그 한가지는 '양심의 가책'이다. 부모은 어디를 가도 모든 것을 위험하게 보는 뉴스를 듣고, 또 아이들과 함께 노는 시간이 충분하지 않다는 보도를 접한다. 그러무로 '좋은 부모가 되어야 한다, 아이들과 함께 지내야 한다.'는 생각이 부모들을 계속 따라다니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저 세대의 부모가 오늘ㄴㄹ에 비해 아이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냈다고 생각하는데 사실은 그 반대다. 한 세기 저에는 어른들이 오늘날의 서양 사람들만큼도 자기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지 않았다. 그러나 오늘날의 우리처럼 양심의 가책을 느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 '양심의 가책'때문에 나 또한 아이들에 얼마나 많은 허용을 해줬던가 생각하니 수없이 많다. 이 '양심의 가책'은 누가 만들어 냈지? 돈벌기 위한 육아 전문가들?

 

264쪽 '시간의 양'에 대해 말하기 시작하는 육아 전문가가 점점 많아지고 있다. 이것은 부모들이 이미 받고 있는 양심의 가책을 더욱 악화시키는 이야기다. 아이들과 함께 지낼 시간을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애쓰면서 언제나 시간에 쫓기는 부모들이 얼마나 많을까? <중략> 부모가 아무리 이기적이라 해도 여전히 대개는 충분히 좋은 부모다.

 

285쪽 해법은 부모의 권위를 다시 강화하고, 부모를 지지하며, 자기 가족을 통제할 권한을 부모에게 되돌려주는 것이다. 명확하고 확고하며 단호한 육아법 때문에 이들이 해를 입었다는 결과를 보여 주는 연구는 하나도 없다. <중략>아이들에게 영향을 주고자 할 때 아이가 너무 고통스러워하지는 않을지 겁낼 필요는 없다. 아이들은 그렇게 쉽게 영향을 받지 않기 때문이다. 아이를 기른다는 것은 아이들이 사회의 규칙을 따르게 만드는 과정이다 어른이 되었을 때 아이들이 부모를 계속 좋아하게 만들고 싶은지 아닌지는 상대적으로 덜 중요하다.

 

317쪽 기본적으로 제대로 된 학교 정책의 중심에는 정의가 자리 잡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감정에 흔들려서는 안 된다. 아이는 요구를 받을 때 불쌍해지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아무도 책임을 묻지 않아르 때 불쌍해진다. .아무도 감히 피드백을 주지 않을 때 불쌍해지는 것이다.